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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허수경

대표 최은순 0 867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노숙-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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