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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이영순

대표 최은순 0 878


햇살이 길게 

혀를 내미는 봄날 오후,

열기를 뿜어대는 

종각역 4번 출구

계단을 오른다


열기 속을 

앞서 걸어 가는 한 사내가

배불뚝이 배낭을 메고

양손가득 팽팽한 긴장을 담은

쇼핑백까지 챙겨 들고 걸어 간다


마음이 시린걸까

후덥지근한 열기 속에서 

그를 감싼 후줄근한 다운점퍼는 

그늘진 향기를 휘적이고


목에 감긴 고급스러운 머플러가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휘청거림 없이 

똑바로 걸어가는 발걸음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흐르고 있다 


지금 그 사내의 등에 매달린 위태로움은

자신의 삶을 업고 가는게 아니라

몰락한 왕조의 꿈을 지고 가는게 아닐까

깊어 가는 오월이 그의 등뒤에서 

햇살을 핧고 있다




억새의 춤-이완숙

 - http://naver.me/x6PgOw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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