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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퍼

신하식 0 317 0

슬립퍼

*光月  신 하 식

드르륵 
현관 덧문이 열리며
온종일 빈 아파트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나는
멍멍이 발길질에 엇박자 흉한 모습으로
임금님을 맞는다
꼬리 흔들며 반기는 멍 친구 보다 
벙어리로 배알하는 나를 먼저 발견하고
피로에 지친 무거운 뒤꿈치를 쿵 얹는다
땀 먼지와 구두 속 열과 뒤범벅된 가스
발 냄새가 고약스럽게 진동하는데
모른 척 받아주고 괜찮은 척 
임금님께 웃어주면
모르는지 아는지 관심도 없는지
희생만 강요 하는구나
싫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육중한 무게와 웅덩이 패인 아픔은 참겠지만
시커먼 내 모습과 고약한 냄새는
주인장 용서 못 하겠노라
어느 날 이리저리 질질 끌고 다니다가
어느 곳에 멈춰 서서 나를 벗어던지고는
고얀 녀석 더럽게 더럽네
오늘은 같이 목욕하자고 풍덩 잠수시킨다
산뜻하니 기분이 좋다
패인 웅덩이도 어느 정도 복원이 되고
발걸음 소리 더 잘 받들어야지
새 친구가 올 때까지는
임금님을 더욱 사랑하렵니다
충성!
나는 룸슬립퍼(room sleeper)입니다

MP光明 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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