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773
어제
932
최대
3,402
전체
963,333

고독한 여행

김미숙(려송) 0 453 0




                  

홀로 무작정 떠나는 
갈 곳도 정하지 않은 채
철저히 외로운 마음을 
더욱 외롭게 토해 낼 듯 
즐기는 나만의 여유다

그러자고 떠났던
젊은 날의 방황이 가물거린다

포도 위에 뒹굴어 날아가는 
프라타너츠 낙엽처럼
사랑이 떠나버리고
아니 잃어버리고
죽을 듯이 아파한 그때
발길 닿는 대로 
동요하는 마음 따라 떠났다

강남 서울 버스에서 내려
다시 막차 강릉행을 갈아타고
지척이 안 보이는 안개 쌓인 
한계령을 넘어 설악으로
또다시 경포대 겨울 바다로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다
살을 에는 영하 이십도
춥기는 한 건지 
노란 전복죽으로 
허기진 배와 추위를 녹였다
혹독한 해풍에도 아랑곳없는
햇살을 가득 안은 
따듯한 소나무 등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도 보고
저 넓은 수평선을 바라도 본다
인적 없는 쓸쓸한 바닷길을 
긴 머플러와 긴 코트 
긴 머리 휘날리며
걸어도 본다 
온통 하얀 세상 푸른 바다 
넘실넘실 파도 백조는 
왈츠를 추며 다가오더니
흰 드레스를 한껏 펼친다
아름다운 세상 눈이 부시다
매서운 칼바람의 손 아귀로 
귀싸대기를 후려갈겨도 
푹푹 쌓인 눈가루와
모래가루가 착착 달라붙고
입속으로 까끌까끌한
메마른 침을 퉤퉤 뱉어내도
꽉 막혔던 속이 뻥 뚫어져
마냥 후련해진다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겨 
찻집으로 향하는데
영화에서나 볼 법한
멋진 빨간색 무스탕 카를 보았다
연예인 같기도 했던 
두 남자의 모습에 
망연자실 넋 놓고 바라보았다
부웅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내 앞으로 보란 듯이 
손 휘파람을 불며 지나간다
씁쓸한 웃음이 나도 모르게
픽하고 새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난
그 무스탕 카를 잊지 못해 
포드와 크라이슬러의 신화를
책으로 읽기도 했다
멋지게 뽐내며 드라이브하는
여행을 꿈꾸곤 했었다

언제나 혼자인 듯
외로움은 이력이 나있지만
삶에 묻혀 늘 잊고 살았다

중년의 어느 시점
직장을 그만두고 떠난 또 
어느 겨울에 
'이해인 시집' 한 권 챙겨들고
춘천으로 떠났었다
또 어느 날엔 무작정 
임원 포구로 달려갔다
아구를 회로도 먹어보고
투명한 오징어회로 소주 한잔
외로움까지 마셔본다
돌아오는 길은 
뜨거운 덕구 온천 목욕으로
피로를 씻어냈다
이렇듯 나름의 여행을 한다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지독히도 끈질겨서
털어내도 마셔대도 떨어질 줄
모른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할 길임을
알기에 늘 그래왔듯 
오늘도 난 
너와 길을 떠나련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손자가
차를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할미 차라고 건네주는 차가
머스탱 같은 빨간 승용차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