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774
어제
932
최대
3,402
전체
963,334

영화같은 날

김미숙(려송) 0 413 0

#수필 



영화같은 날




영덕으로...

구 도로를 타고 다녀왔다.

가랫재를 넘고

신촌 약수터에 들러 약수도 한입 마시고 

황장재를 넘으며

눈이 와서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미끄러지던 아찔했던 옛 기억도 떠올려본다.

관광객들로 영화를 누리던 안동 간 영덕

구 도로는 새로 난 고속도로로 없어진

휴게소들과 현재 터널을 뚫고 정비하는

중에 있어 그나마 활력소가 되길 빌어보며

우린 천천히 달리며 추억을 새긴다.


영덕을 지나 강구 오포로 물회를 먹고

다시 돌아서 바닷길을 타고 청어 과메기가

널려있는 창포를 지나 해맞이 공원에서

바람을 맞는다.

불긋한 지붕이 이국적인 노물과 쫄깃한

회 맛을 잊지 못하는 석동을 지나고

딸아이의 안동병원 입사 시 연수원이 있는

경정을 지나 축산항을 거쳐 대진으로

굽이굽이 푸른 동해 바닷길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회 초년생이 되고 단짝이었던

문경여자고등학교 친구와 멋을 부리며

처음으로 해수욕장을 간 곳이기도 하였다.

눈이 큰 그녀와 난 여고 시절 겨울 코트를

상주에 있는 어머니의 단골 의상실에서

똑같이 맞춰 입기도 하며 다녔고 결혼하고

애를 데리고 부산 온천장 살 때 놀러도

왔었던 친구다.

지금은 남편을 먼저 보낸 죄로 묻혀 사니

안타깝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눈이 내렸다가 보슬비로 바뀌었다가

회색 구름 잔뜩 덮였다가 어느새 해님이

촤라락 세찬 바람에 실눈으로 부릅뜨고

바라본 수평선은 여전히 그대로 설렘을 주며

유혹한다.

볼 수록 푸르고 푸르다 못해 시커멓다.

잔잔히 비친 햇살도 거친 파도에 일렁거려

눈이 부시고 부서지는 파도도 하얗다 못해

푸르다.

미끄러질 듯 가파른 바위에 걸 터 앉고

세월아 네월아 낚는 낚시꾼들의 행렬도

부러운 지경이다.

낚시광이었던 그이는 간간이 내려 낚시 몫이

좋은 곳을 익혀두며 다음을 기약한다.

커다란 피데기 오징어를 전기구이 해서

쭉쭉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바라보는

여유가 이렇게도 좋은 걸.


다시 고래불로 거쳐 후포항까지 갔다.

돌아오며 백석을 지나니 고마운 인연이

생각난다.

양산에서 보증 어음 빚으로 잘나가던

레스토랑을 어이없게 넘겨주고

막막했던 한때

강구 풍물거리서 횟집을 차려놓고

손쉬운 조개구이를 하게 되고

아침마다 삼사십분 거리에 있는 백석까지

팝송을 들으며 수평선 붉은 해가 떠오르는

바다를 보며 가리비 어장에 들러 조금씩

떼와서  장사를 시작하곤 했는데 그 시간

만큼은 떨어져 있는 아이들도 잊은 채

나만의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엔 가

어장이 부도가 나서 그만두게 되었다며

어두운 얼굴로 어장 주인이 내 가게에

찾아오셨다.

다른 곳도 있었을 텐데 내게 일부러 와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남은 가리비를

전량 받게 되었다.

커다란 수족관에 한가득을 채웠더니

그이도 놀라고 지나가는 관광객도

주위 가게 사람들도 놀라 저걸 다 어쩌려고

걱정하는 걸 불식시키고 팔은 적이 있었는데

가끔은 잘 사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려운 때 그래도 신뢰로 맺은 소중한

인연이었기에 감사하다.

떼러 가던 그때 우연히 가까이 있던 카페에

가끔 들러곤 했었던 쉼의 공간

칠보산 솔밭 카페를 십몇 년 만에 가보았다. 

잔디가 곱게 깔린 아담한 집은 그대로인데

자그마한 간판도 없어졌고

문은 굳게 닫히고

큰 키에 허연 긴 머리 우아하신 주인의

모습은 눈에 아른거리는데

솔밭 푸른 기게만 청정하다.

아쉬움을 두고 하늘을 보니 내 마음처럼

다시 잿빛이다.

세월의 무심함이여!

미련 없이 돌아서며 추억을 그려본다.


늘 뭐가 그리도 어려운지

쫓기듯 살아가는 시간들을

조금씩 이젠 멈춰보련다.

그래도 될 듯하다.


그렇게 눈 눈 했더니 오전에 살짝

흩뿌려지는 걸 뒤로하고 더 좋은 바다를 

보고 왔는데 

온통 새하얀 눈 밭이다.

헐 아쉬움은 또 아쉬움대로...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