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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추억

김미숙(려송) 0 384 0

#수필


   


   다락방의 추억




보물 창고 다락방이 있었다.

어릴 적 여름엔

저온 창고 마냥 시원해서 즐겨 오르곤 했다.

다락방은 제법 컸다.

자그마한 서쪽으로 난

창호지 바른 미닫이창을 열면

시원한 서풍이 얼굴에 훅하고

불어 댄다.

학교를 안 가는 날이나 마치고

집에 오면 놀이터가 되었다.

아버지가 보셨던 아주 얇은

시집 같기도 한 독일어 책이 있었는데

내용도 당연히 모르지만

그저 글자를 따라 써보기도 하며

아버지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다 얼굴을 파묻고 울기도 하고

또 재밌는 책도 만화도 보고

그러다가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려 한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때는

저녁노을이 어찌나 예쁜지

정신없이 바라보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머니께서 밥 먹자고

부르셔야 내려온다.

난 또 후딱 먹고 다시 오르면

열린 창 사이로 무수한 별빛들이 쏟아진다.

마당에 있는 들마루에 누워서

보는 별들도 좋지만 다락에 누워

바라보는 별빛이 유독 더 좋았다.

더 가까이서 보는 기분이었다.


'은하수는 저토록 예쁠까'

'견우와 직녀는 만났을까'

그러다 깜빡거리며 지나가는

비행기 불빛을 볼라치면

'나도 저 비행기를 언젠가

타볼 거야 승무원이 될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본다.

어느 날은 아예 다락에서 

잠들었다가 새벽에 너무도

추워서 깼더니 모기 밥이 되어

긴 옷을 입은 덕분에 얼굴만

붉은 반점들이 다다다 해져서

가려워 혼난 적도 있었다.

어머니께선 그만 내려오라고

그러시곤 잠드시고 그런 나를

재밌어하시기도 하셨다.

그 와중에 넘어가는 새벽 반달도

신기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남동생과 나는

달콤한 향기 폴폴 나는

먹거리들로 가득 찬 다락문을 열고

높은 문 턱을 오르려 발밑에

이불이든 책을 쌓아 계단을 만든다.

서로 마음에 안 들면 올라간 사이

계단을 싹 치워버려 뛰어내리다가

발목이 아프기도 하여

어머니께서 그러면 다락문을

잠그시겠다며 혼을 내신 뒤로는

그런 장난은 안 하기로 약속했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겨우 올라서

둥그런 야트막한 나무 계단을 또 오르면

잡동사니들 헤쳐 구석진 곳에

커다란 담요를 깔아놓은

넓이의 공간이 있어

앉아 놀기도 하였다.

놀다가 배가 출출하면 달달한 홍시도

꺼내 먹고 사과는 깎을 줄 모르니

그냥 이쁘고 작은 것만 골라

뺀질뺀질 하게 옷에 닦아

붉은 쪽부터 그대로 생쥐 마냥

사각사각 먹는다.

그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고 나선 또 추워 달달 달

떨리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차가운 바닥에 드러눕는다.

한참을 있다가 일어나면 그새

꽃잎이 박힌 창호지 창에 비친

햇빛이 어둑어둑해지고

공장 소리도 멈추고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미끄럼 타듯 내려온다.

입술이 새파래진 우릴 보고

또 다락에 올라갔냐 시며

혀를 차신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모과를 커다란

떡 할 때 쓰는 방티(대야)에

한 통을 방에 갖고 오셔서

도마에 놓고 칼로 써시는데

모과 향이 어찌나 새콤한지

코를 벌름벌름하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툭툭 써시기도 하고 가는 채로도

써시는데 힘들어 보이셔서

도와 드리렸더니 이크

칼이 들어가질 않는다.

단단한 껍질과 울퉁불퉁 못생긴

균형에 어머니께선 다친다고

아예 손도 못 대게 하시며

그 많은 모과를 다 써셨다.

이번엔 씻어놓은 커다란

항아리를 갖고 들어오셔서

다락으로 올리시는데

아휴 저 무거운 걸 뭐 하시려는지

이 고사리 손으로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채 써신 모과는 꿀병에 차곡차곡

담으시더니 꿀을 넣어 몇 병이나

만드시고 납작하게 써신 모과는

배와 생강과 큰 봉지 설탕과 함께

그 단지에 갖다 부어 신다. 

며칠이 지나고 이번엔 미리

가마솥에 끓여놓은 물을

한 양동이 두 양동이 갖다

올라 부어 신다.

그 정성이 대단하시다.

그땐 정말 의아했지만 모과 향은

다락에 오를 때마다 내 꼬 끝을

울렸다.


드디어 시음을 하는 날

어머니께서 커다란 국자와 주전자를 들고

우리를 다락에 올려 주시어 세 사람은

단지 앞에 마주 보고 섰다.

그 순간 불빛에 비친 궁금한 얼굴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뚜껑을 여신다.

가재로 덮어져 있던 고무줄을

빼어 열어놓으니 향기가 진동을 하였다.

어머닌 맛을 보시더니 미소를 띠시며

우리에게도 떠 주신다.

한 국자씩 마셨다.

아! 내 몸 구석구석 새콤달콤

시원하고 짜릿함에 몸을 비틀며

또 한 국자를 마셨다.

동생과 나는 그 맛에 혼을 뺀 것

처럼 좋아했다.

어머니께서도 마시고선 그렇게도 좋아하는

우릴 보시며 흐뭇해 하신다.

그 뒤로 우린 온 겨우내 모과 음료수를

마시러 다락에 뻔질나게 오르고 뛰어내렸다.

다락 문지방이 반질반질해졌다.

훗날 오란씨를 좋아하고

지금은 자몽에이드를 좋아하지만

그 맛은 따라오지 못한다.


소중한 인연 속 

사단법인 《문학애》주최

작년 대전 장태산 문학기행에서

우리 문학인들을 위해

먼 거리임에도 귀한 시간 내시어

강의를 해주신 인연으로

시집도 보내주시고

시인이시면서 문학 평론가이시며

광주 대학 출강을 하시는 페친

이상호 교수님께서 페이스북

재미지게 모과 포스팅 하신 글에

댓글로 일전 해마다 꼭 한 번씩은

목이 아픈 내가 딱 필요하다 했더니

애써 농사지으신 모과를 기꺼이

보내주셔서 황망하면서도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모과를 본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하여 모과를

어루마지며 아릿한 옛 기억을 새겨본다.

값을 치루렸더니 식초물에 담갔다가

맛나게 해 드시면 된다 시며 급하게

전화를 끊으신다.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나도 정성껏 모과를 채 썰고

툭툭 썬다.

손이 아프다.

마음도 아프다.


농사를 잘 지어서 나눔 보내주신

교수님의 그 마음도

힘들게 썰어 담그셔 맛나게

마시게 해주셨던 어머니의

그 정성 그 마음도

감사함으로 내 마음에

고스란히 고이 담아

올겨울엔 시원하고 따스한

추억도 마셔보련다.

 

언젠가 다락방 시리즈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부모 잃은 남매의 냉혹한

슬픈 현실의 이야기에

밤을 새우며 완파하고 

꺼이꺼이 소리 내며 울었다.


내겐 그 다락방은 꿈을 꾸게 하고

사춘기 소녀 시절을 함께 했다.

라디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면서 별을 바라보며

밤을 하얗게 새고 

어느 날 TV가 들어오고

명화극장에 빠져 다락을 잊었다.

지금 그 고향 집은 빈터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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