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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아프다

김미숙(려송) 0 36 0



지독한 감기로 해마다

두어 번은 몸살을 앓는다.

기침을 한 달이 다 되가도륵

해대니 가슴팍이 돌덩이

얹힌 느낌이다.

약은 그때뿐이고

기관지에 좋다는

생강, 도라지, 배 달여

먹어도 마찬가지다.

예방접종도 다 했는데

낮엔 또 견딜 만큼 다닌다.


주말엔 농장에도 몇 주 만에

갔더니 사과는 곧 따라는

신호를 주며 대기하고 있고

귀하다는 상추, 배추, 열무,

안동 겉절이 배추가

온 밭에 진을 치고 있다.


수고한 동생을 늘 애틋해

하시며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큰 시누께서 서울서 새벽에

얼마전 결혼한 조카를 대동하여

내려오셨는데 대량 주문받은

사과, 참깨, 고추, 대추, 나물,

널린 호박 등 수거를 하신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드릴 수 있어 뿌듯했다.

선금이 입금되고 내게도

감사하게도 수고비를 주신다.

SUV에 빵빵하게 싣고 가셨다.

한 번씩 오시면 두 시누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내시는

시어머님을 보면 면목이 서질 않는다.


저녁이 되니 이젠

열이 오른다.

39도 고열이다.

시어머님께선 놀라시며

마스크를 찾는다.

남편도 걱정하며

빨리 가란다.

집에 돌아오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렇게 아프다.

겨울 엄동설한에 태어난

내 사주를 본 지인은

안쓰러워 눈물이 난단다.

어이가 없으려나

그래도 난 겨울이 좋다.

떠나고 싶은 충동이 솟는다.

방랑객이 되어 고독을

즐기는 나는 천상 시인일까?

여행을 다니며

어쭙잖은 글이어도

진심을 쓰고 싶은 그것뿐인데

얄짤없는 현실은

구속하고 또 구속한다.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


친구가 너무 오래 앓는다며

얼마나 안쓰러웠으면

문자를 장황히 보냈는데도

못 보고 타이레놀을 먹고도

끙끙대며 뒤척이는데

전화가 온 것이었다.

아주 귀한 약재를 24시간

정성을 다해 직접 달여

날 주겠다고 바빠서 못 오니

가지러 오란다.

눈물이 핑 돈다.

울 엄마 같은 사람이다.


밤잠을 설치고

아침은 또 그렇게 일어나

손자들을 픽업해 주고

예천여성합창단의

정기연주회와

수원 남성합창단과의

콜라보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 중인 우리는 마침

예천 약포 정탁을 기리는

연주회 행사가 군민회관에서

열리게 되어 첫 순서로

참가했는데 뜨거운 박수로 

우릴 맞아 주셨다.

예천 출신인 약포 정탁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정승에 오르며

이 순신을 죽이려는 왕께

상소를 올려 죽음을 면하게 한

큰 위인이시다.

군수님을 비롯 각계 인사들과

예천 군민들, 연주회에

참가하는 각 학교 어린이

합창단들로 붐볐다.


다시 연습실로 와

맹연습을 한다.

지휘자님과 반주자님,

단장님과 총무님, 각 파트장님,

단원들의 열성이 대단하시니

가까이 계신 가족 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연주가

되길 기도한다.

이 와중에 딸도

매번 연주회 출연으로

바쁘게 다닐 생각을 하니

나도 기꺼이 힘을 낸다.


알토 파트의 번개 회식으로

배도 고픈데 둘째 딸의 친구

부친 쌈밥 가게를 갔다.

일 년이 다 되도록

파트 회식은 처음이다.

제육볶음에 우렁이 강된장

꽃게 육수의 된장찌개에

푸짐한 쌈으로 맛나게 먹었다.

바로 옆 소담한 카페에서는

대추차를 마시니 정감이 간다.

알토장께서 그간 긴 얘기도

없이 인사만 하던 단원들께

농사를 지으며

시인이라고 날 소개하신다.

일전에 써준 시를 단톡방에

올리며 낭독을 해보라니

참 민망하기도 했지만

음악도 흐르고 표출을 했다.

당신들의 인생도 빛나는

윤슬이길 비는 마음이었다.

다들 어쩐지 하는 분위기라

감사했다.

농사일로 그간 바쁘게 보냈던

말씀을 드리니 반전이란다.


내일은 그동안 너무도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의

하지 정맥류 우측 다리를

수술하기로 되어 아침

일찌감치 안동병원으로

가야 하고 간 김에 나도

진료를 받아야겠다.

병실에 못 있겠으니

부천에서 내려온 아들이

간병하기로 했다.

예전 수술실 근무했던

사위는 동료였던 지인께

잘 살펴주라는 당부를 

해놓은 상태다.


진정 위해주는 가족과

따듯한 인연 속에 안부를

늘 물어주는 그대들이 옆에

있어줘서 늘 감사하다.

저물어가는 이 가을에

마음도 몸도 그대들도

너무 아프지 말자.


                 려송/ 김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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