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문학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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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11:06
존재의 환지통들
(시인 박수현)
윤석산 시집 『존재하지않는 존재에 의한 통증』
‘있다’ 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환지통.3
윤석산
창밖 벤치에 그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지난 가을 헤어진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이 앉아 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뭐해?“ 톡을 보내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슬픔이 앉아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꽃잎들이 지고……
그 사람이 바르던 스킨 냄새가 스며 들어와
풍경 속 그 사람과 생각 속 그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하다가
산다는 건 뭐고, 사랑한다는 건 뭐며, 내가 죽어도 그 사
람은 저기 앉아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내가 늦은 저녁을 준비하며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
리를 듣다가
‘있다’와 ‘없다’ 사이로 아득하게 열리는 초원으로
우리 안에 가둔 생각들을 몰고 아주 먼 길을 떠납니다.
어? 그 사람이 일어나 손을 흔드네요.
다 어두워진 시각에 흩어지는 생각들을 몰고 길을 떠나는
게 우스운가 봐요.
삘릴릴 삘릴리……, 오늘 저녁 서역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