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보다가 / 윤석진.
윤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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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13:57
모자를 보다가 / 윤석진.
모자를 쓰고 바람같이 오가며 어디든 갔다
야윈 모자는 광대처럼 불끈 솟았다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었는지
등산용품점 마네킹에게 물었다
주인 여자는 반려견과 결혼하고
같은 모자를 강아지 이불처럼 덮었다
산객이 오면 꼬리를 흔들어
강아지 털 냄새를 실룩이며
바람이 들면 안대 삼아 눕는다
"고놈 참, 이놈 참,
모자를 쓸 때가 그래도 좋은 겨"
비도 눈도 없는 저녁이었다
실오라기마저 벗겨진 저 마네킹 여인이
창가 살아가는 법을 훔쳐보다가
시선마저 남루해진 중년의 눈빛에서
푸른 숲 산객으로 볼 수 있는 낡은 모자에서
산꿩 울어대는 소리가 났다
#모자를보다가 #윤석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