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정원 / 윤석진.
윤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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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21:48
그 여자의 정원 / 윤석진.
여자는 자기가 심심하다고
오늘도 치부를 한다
사실은 말이야 남자는
눈 내리면 미끄러질 걱정과
비 내리면 마음마저 축축하다는 둥
햇볕 좋은 날은 덥다는 둥 생각만 하지
그런데 말이야 여자는
눈 내리면 아이처럼 좋아하고
햇볕 좋은 날에도 바다 갈 생각에 즐겁고
비 내리면 커피 한 잔을 놓고 그냥 좋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는 말이야
치마가 자기네 전유물로 여기지만
사실은 말이야 남자가 먼저 입었다는 걸
여자는 알고 있다
여자가 화장을 고칠 땐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남자는 알지만
여자는 남자가 먼저 다가오길 바라지
진즉 여자들은 말이야
언제나 떠날 준비를 미리 하지만
남자는 곰탱이라서 지난 후에야 모가지를 빼고
서성이는 어릿한 푸성귀라는 걸
그 여자들은 알고 있다
여자의 정원에서 남자가 심심하다고 하면
그건 무지한 배짱이 도지는 징조니
가슴을 헤집고 꽃을 심는 정원에서
여자는 날마다 거울을 꾸미고 있겠지
그건 말이야
그 여자의 정원에서
남자를 잘 가꾸지 않고 몰라서 그래
한 여자의 정원에 앉아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둥 어설픈 이야기보다
같은 방향에 서서 바라보는 나무를 위해
정원에 핀 당신께 물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