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밭에서
윤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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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9 16:25
배추밭에서 / 윤석진.
고랭지 한처럼 숨어 호강하는 너
살풀이하듯 밭떼기 장사꾼들이 덤벼들었다
때가 되니 초록빛 손들이 하나씩 동여매고
농막을 외워 싸며 반듯하게 사열한다
찬 서리 내리길 기다렸는지
고랑을 넘어 이랑마다 속을 달구고 있었다
그해 배추가 똥값이라는 소문인지
게비 돈 한 푼 없다고 했는데
무쇠로 구운 조선 낫을 갈아
마구 목을 친다
어린 촌부의 아린 마음도 무시한 채
난망함도 잊고 소줏값만 놓고 가라지만
묵직한 어깨가 한없이 내려앉아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앉아 있더니
황소 숨소리마저 쓰러지는 사선 따라
뒤돌아보지 않고
텅텅 경운기를 대고 있다
#배추밭에서 #윤석진시인
■詩作 NOTE
젊은 날 선배가 이쁜 형수를 데리고
산골에 들어가 숨어 살던 시절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