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숙인 나무 / 윤석진
윤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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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3 22:37
허리 숙인 나무 / 윤석진
한 그루의 나무가 버티는 것을 보라
평지나 바위나 절벽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을 향해 뿌리내릴 때 가능한 일이다.
저 파닥거리는 나뭇잎을 보라
바닥을 위해 살랑거릴 때 높은 곳보다
제대로 아래로 내릴 때
나무는 수액을 당겨 사는 것이다.
살기 위함은
누구나 증거를 대며 나풀거리지만
큰 바람과 작은 바람에게도 내주고 보내주고
그리워하지 않을 때 잘나지 않을 때 오래도록 산다.
지금을 살 수 있다는 건,
사는 게 좋아 뿌리내리는 것만은 아니다.
나무처럼 산다는 건,
힘들면 못나고 휘어져도 괜찮다.
버리고 다듬고 비우며 떠나는 여행에서
오롯이 산다는 게 능사라면
들숨과 날숨으로 머리 숙여 버틸 때
씨줄과 날줄이 거듭 엮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