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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숙인 나무 / 윤석진

윤석진 1 767 0

허리 숙인 나무 / 윤석진



한 그루의 나무가 버티는 것을 보라

평지나 바위나 절벽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을 향해 뿌리내릴 때 가능한 일이다.

저 파닥거리는 나뭇잎을 보라

바닥을 위해 살랑거릴 때 높은 곳보다

제대로 아래로 내릴 때

나무는 수액을 당겨 사는 것이다.

살기 위함은

누구나 증거를 대며 나풀거리지만

큰 바람과 작은 바람에게도 내주고 보내주고

그리워하지 않을 때 잘나지 않을 때 오래도록 산다.

지금을 살 수 있다는 건,

사는 게 좋아 뿌리내리는 것만은 아니다.

나무처럼 산다는 건,

힘들면 못나고 휘어져도 괜찮다.

버리고 다듬고 비우며 떠나는 여행에서

오롯이 산다는 게 능사라면

들숨과 날숨으로 머리 숙여 버틸 때

씨줄과 날줄이 거듭 엮일 때

비로소 살았다는 것이다.5810e614595f8436c42c16858fba3210_1587649038_8434.jpg






1 Comments
윤석진 2020.05.07 23:21  
굽은 나무는
쭉쭉 잘생긴 나무보다 오래 산다고 합니다

이천 백사에 반룡송을 보면,
사직단을 지키기 위해 굽은 반룡송을
심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