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 고추잠자리 / 윤석진.
윤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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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0:35
고추밭 고추잠자리 / 윤석진.
강나루 언덕 고추밭 사이 내려앉은 잠자리
강물은 모른 체 저녁은 흐르고 있었다.
제방 돌더미 앉은 물새 한 마리마저
어미 찾는 길 잃고 처얼썩 부딪쳐 노래하는지
전원에 퍼지는 만종 소리 친구 삼아
매어놓은 소 닿 없는 나룻배처럼 풀려지고
노인은 고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구비 쳐 흐르는 노을마저 달빛과 교대 하는지
묶어 놓았던 날개 뾰족한 십자가를 향해
하루 지나는 물소리마저 외면하고
고추잠자리처럼 빙빙 순회를 하며 씻어 말린 얼굴에
작은 교회당 까지 올라 물빛 벤치에 앉았다.
세월 지난 이순의 나이
그 강둑에서 유년을 바라보니
거울 속 중년이 된 아저씨와 붉은 잠자리는
푸성귀와 고추 심은 영토에서
빛 고은 마른 고추 한 포대를 헤집고
더는 흙냄새며 강물 따위와 결별이라는
다짐을 했건만,
때 이른 내일이 앉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