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다가온 처서
김정애
2
1662
0
2018.12.17 12:49
살며시 다가온 처서
김정애
푸름이 시들어 기죽는 여름
처서는 마타리 과꽃 쑥부쟁이
살금살금 데리고 가을을
앉힌다
꽃보다 아름답던
초록도 지쳐 기력 쇠하고
여름이 두고 간 자리엔
고독이 머물고
외로운 사람들 가슴엔
이유 없는 서글픔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음은
왜인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푸념이 허공을 맴돈다
외로움에 발목 붙들린 채
그리움이란 녀석에게 마음
뺏긴 채 허기진 배 채우듯
보고 싶단 말 꾸역꾸역
삼키나보다
마음에 꼬깃꼬깃
접어 둔 상처는 하늬바람에
실려 보내고
봉숭아 꽃잎
눈물처럼 떨어지고
쓰디쓴 익모초도
꽃 피워 내는데
사람인들
왜 꽃을 못 피우겠는가
왜 향기를 못 내겠는가
처서가 데려다준 가을은
칡꽃 향기에도 묻어있고
마음에 담아 둘 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