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운명
古松 정종명
어느 바람 불던 날 문틈에 낀 비명은
숨이 막혀 헐떡거린다
습기 높은 비 오는 날에는 그나마
견딜만하다는 듯 비어져 가는 내
가슴은 호수처럼 잠잠했다
사랑이 드나들지 않은 마른 가슴에
자욱한 공포가 엄습한 채 그리움
여기저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허둥대며 들 수 셔 벌집 같고
천년 세월 지켜온 박물관 같은 빈 육신
울음소리는 망각의 강을 넘지 못해
바삭 마른 뼈대만 남았다
뒷골이 시리도록 어수선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 홀로 버려진 어린이처럼
지르는 비명은 입술을 벗어나지
않은 채 매달려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월 좁은 가슴에
품어 내기 벅찬 시련도 즐겨야 할
운명인 것을.
2020. 0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