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문장
나라는 문장 (1,366)
古松 정종명
서산으로 기운 해의 꼬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여다본다
나라는 한 권의 사전이 벽에 기대어
서서 우드 커니 빗살을 읽고 있다
듬성듬성 책 읽는 소리가 귀속에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하얀 포말로 말을 걸어온다
사방에 기둥이 된 채 선 책의 표지가
눈의 중심을 붙잡지만 사전 속의 낱말들은
어둠에 덮여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지만 책갈피 속의
해석은 삽화처럼 정겹다
나라는 문장을 풀지 못해 영어의
몸이 된 사전은 무거운 침묵에 쌓여
압사된 것 같다
검은 표지에 덮여 동면에 든 곰 같은
나의 문장은 새 학기엔 누군가 책장을
넘겨 잠을 깨울 것이다.
2021. 0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