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래정
긴 시간 햇살이 집 지어 놓고
어미의 맘으로 기다리고 있다
명예와 권력 다 내려놓고
시문 벗 삼아 유유자적 즐기자는 벗의
그 한마디가 흐릿흐릿 기억을 토해낸다
대숲 바람에 솔향이 내려앉아 나뭇잎 스담거리고
붓끝으로 써 내려간 벗들 마음
정자 처마 아래 빼곡하게 걸어놓았다
저 아래 흐르는 냇물에 발 담그고
물비늘 소리 한 움큼 떠다
손안에 찰랑거리며 비춰본다
우듬지 오르락내리락 햇발에
농부들의 우마차가 덜컹컬컹 쉬어간다
연기의 잔영 흩어져서
툇마루에 추억 자욱이 널어놓고서
양옆으로 우거진 박달나무 밑 토끼 몰이하던
유년의 풍경이 소복소복 내려앉아있다
말아 두었던 시간의 태엽 풀면
운둔의 시간이 올곧게 살아 숨쉰다
세월에 묻힌
침묵했던 이야기들 치맛자락에 깨어나니
그 옛날 도포자락이 출렁거린다
이명처럼
*귀래정: 1456(세조2) 순창으로 낙향한 신말주의 정자
*신말주: 신숙주의 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