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개의 별과 42개의 지우개
58개의 별과 42개의 지우개
인연/ 김영주
썩은 고랑에서 싹이 나는 감자 몇 알과
삭풍에 종기 난 고구마 몇 조각 품은 가난한 솥
몇 살 먹지 않은 나뭇가지는 뜨거운 아궁이에 버려져
신분도 없는 재만 남기고 연기로나마 하늘에 가곤 했다
밀가루 몇 그릇에 눈물 한 바가지 붓고
달빛으로 밀어 밤안개 끊는 자락에 떠 넣은 수제비
부족한 양식에 밤 별 몇 뿌리 훔쳐
호롱불 아래 다산의 손에 쥐여주던 설움
풍등의 빛은 내 별이었다
돌아가고 싶지만 지워진 별들은
그 하늘에 잠들 수 없는 영혼의 낮달
구슬 치던 눈 속에 고독과 외로움 담길 때
따 먹은 별 호적에 적힌 나이와 같은데
백발이 무성한 얼굴에 핀 세월은 별을 지워간다
모진 풍파에 견뎌온 십이지장
흐릿한 삶 개척하던 두 조각의 뇌
어설픈 판단에 놀란 오장 육 보
걷고 잡을 수 있는 수족이 전부인 영장 동물
초라한 이력서 들고 삼수갑산 구만리 헤매다
58개째 별을 본다
별처럼 영롱하리라 믿었던 두 눈에서 사라지는 사물들
느끼지 못하는 감촉 식탁 위에 쌓이는 봉투만큼 지워가는 시절
자신 있게 내밀던 이력서는 한 줌의 햇살에 구겨져
보잘것없는 지팡이로 썩어가는 고목 아래서 걷는다
어느덧 몇 개의 지우개가 사라졌다
58개의 별 중 42개만 지우고
남은 별 바라보는 철새라도 좋고
바람의 꼬리에 묻은 향기라도 좋으련만
흰 머리 뽑는 시간의 소리는 찰나와 같아
선선한 가을 날씨에 흩날리는 붉은 낙엽
나 닮은 햇살 지우개 쓰지만
남은 별 닦는 하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