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는 꿈틀대야 벌레다
벌레는 꿈틀대야 벌레다
/ 門下
나는 필시 밑빠진 독을 품고 있는 게다
집어넣으면 닳는 것인지 삭는 것인지
때마다 줄어들다 못해 어느 시점이 되면
텅 빈 공간 좀 메꿔달라 조르니 말이다
공붓벌레는 글씨들을 파먹고
화가는 화선지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데
할아버지께서는 한번 살다가는 一生
一百 番을 고쳐서 가셨음에도
一片丹心의 매듭은 결코 풀지 않으셨다
티는 옥이 될 수 없음을 아는 요즘
귀를 막는 건지 눈을 못 뜨게 가리는 건지
풀어놓은 강아지 입만 봉하면 될 것을
내 生이 아니라고 성대는 싹둑 잘라놓고
개과천선은 뭣하러 외치는지 모를 일이다
죽어서 넋이 있다 없다를 가리기 전에
잿더미에서 사리가 나오던 안 나오던
필연에 대해 간과할 일은 아닐성싶은데,
구겨진 체면에도 꽃 피는 봄날은 온단다
마이크가 고장 나 노래를 못 부르겠다
붓이 맘에 들지 않아 걸작이 만화 같다나,
개천 물고기는 헤엄을 잘 쳐야 물고기요
벌레는 어디서나 꿈틀대야 벌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