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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운 0 523 1

길 / 鶴里  정 병 운


나는 평평합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렇지는 아니합니다

어떤 나는 질퍽하고 어떤 나는 울퉁불퉁하기도 하며

아스팔트로 숨막히게 답답하기도 합니다


늘 얼굴이 밟혀서 체면이 말이 아니며 어떤 꼬마녀석은

내 얼굴에 가끔 '쉬'를 해서 갑자기 온기를 느끼게도 한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내 팔자인 것을


나는 사연도 가지가지 꿈 찾아 헤매는 나그네들의

다양한 넋두리에 맞장구치면서 그들의 애환을 함께 합니다

이만한 친구 어디에 있을까요


비록 언제나 얼굴이 밟혀 자존심도 많이 상하지만

말없이 나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살아간답니다

이만하면 제 밥값은 하고 사는 것이지요


모두가 힘들어 울 때 좋아서 기뻐할 때 비가 오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

그리고 눈오는 날에도 변함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합니다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답니다


저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얼굴을 밟으려 오고 있네요

또 다시 얼굴을 내 놓아야 하겠습니다

얼굴을 밟히는 순간에도 내 위에 펼쳐진 하늘은

맑게 파아란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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