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밭에서
전수남
2
1175
0
2019.09.19 07:59
메밀꽃밭에서
예목/전수남
나지막한 야산을 등 뒤에 두고
하얀 고깔을 머리에 뒤집어 쓴 듯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운
메밀꽃의 춤사위
산들바람에 묻어나는 꽃향기가
그 옛날 님의 분 냄새를 불러와
꽃길을 거니는 연인의 뒷모습에서
아련한 실루엣이 환영처럼 출렁인다.
입맞춤 한 번에 신세계가 열린 듯
감미롭던 그 날의 기억
아직도 입가에 촉촉이 남아 있는데
메밀꽃의 달콤함에 취한
흰나비 한 마리
하늘하늘 날갯짓을 해도
눌러앉은 마음 떠날 줄을 몰라
메밀꽃밭 속에서 처연히 길을 잃는다.
(2017.9.14.)
*처연히(悽然) : 애달프고 구슬프게.
*사진 : 박해현님(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