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잔을 채울 때
홍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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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4 21:29
빈 잔을 채울 때
月花/홍 현정
어렴풋 세월이 담장 넘을 때
깊게 팬 주름에 빗장뼈가 드러나고
굴곡진 낙망 잃은 텃밭 한가운데
잡초만 무성히 터를 잡고 올라온다
깡마른 손마디에 꺾인 청춘
흙 묻은 손, 연실 이마를 훔쳐보아도
끝없이 타오르던 고독의 불길은
성난 터줏대감 헛기침에 재를 남긴다
누군가의 일침은 고개 숙인 장인
수행의 봇짐을 거듭 지게 하지만
역동적 변화에 자취를 감추는 가시연꽃
그대에게 행운을 품어 드리오리다
한잔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살면서 넘을 고개가 아직 많은데
안주는 손가락 빨면 되겠지만
빈 잔엔 무엇을 채워 부어 볼까요
허름하게 살 오른 정직 한 움큼
강단 있게 마른 절개의 자존감
술잔에 넘쳐흐르는 포만감의 뚝심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마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