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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花 홍 현정
떠나는 것이 여행이겠습니까
잠시 각자의 모습으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게
지혜로운 여행지 선택일 수도
세상을 살면서 비워 내는 일
채우는 일 보다 어려웠습니다
이타적 소신은 남모르게
미명의 외로움을 깨웠고
사랑이라는 미묘한 언어는
그림자처럼 밟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해할까 봐 괜찮다는 말
가슴의 눈물로 헤매었습니다
끌어안은 채 망설인 마음
타들어 가는 삶의 능선에
수십 번 용기로 다시 올라섰는데
결국엔 모든 건 백지였습니다
인생은 백사장 모래처럼
파도에 쓸려 시나브로 사라지는 것
끝없이 그려 넣어도 텅 빈 자화상
부끄럽지 않은 여백을 남겨봅니다